사진정보/길 위의 오늘

이제 곧 겨울. 산책하다 만난 행운의 네 잎 클로버,단풍잎,그리고 길냥이.

길 위 2021. 12. 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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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을은 충분히 만끽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그만큼 가을의 색깔들이 너무 예뻤고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시간들이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일단 집에 들어오면 나가기 싫은 집안에서의 생활. 늘 그런 저를 주변에서는 걱정을 합니다. 1년 내내 집에서만 있는 줄 압니다.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하고 저도 산책도 하고 나가기도 한다고 말을 해도 그때뿐, 또다시 똑같은 말로 걱정을 합니다. "집에만 있지 말고 산책도 하고 운동 좀 하고 그래"라고 합니다. 이런 걱정은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생긴 어른들의 걱정입니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신다고 그렇게 말을 하고 설득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물론 저는 이상하게도 집에 있는 시간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러는 반면 또 나가서 여기 저기를 둘러보는 것도 좋아합니다. 길 위에 머무는 시간은 아주 정확한 목적으로 나갑니다. 아무 이유 없이 나가는 경우는 없습니다. 혼자 다니는 것은 싫어합니다. 혼자 다니면 꼭 겁먹은 강아지 같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꼭 옆에 데리고 다닙니다. 누군가 저에게 시간을 내주면 같이 나갑니다. 정확히 어떤 목적을 위한 마실이 아니면 집에서 글을 씁니다. 책을 읽습니다. 생각을 합니다. 직장을 나오고 다시 취직을 하고 싶었지만 재취직은 무척이나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취직을 하겠다는 마음을 접어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어른들의 걱정 어린 전화가 가끔씩 옵니다. "집에서 뭐하니 집에만 있으면 안 돼"라고요. 정말 쓸데없는 걱정입니다. "엄마 나는 잘 지내요, 걱정하지 마세요"사람들이 어떤 편견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매우 잘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마실을 나갑니다. 물론 저와 함께 해주는 남편과 같이 갑니다. 올 가을이 가는 동안 인상깊었던 길 위의 사진들입니다.



길 위의 사진관
2021년 가을
산책하며 만난 길 위의 풍경

올 가을 산책길에서는 행운의 클로버가 많이 보인다.

올 가을에는 이상하게도 행운의 클로버가 많이 보입니다. 보이는 산책길의 공원에 지천으로 널렸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던 제 남편이 갑자기 길에 앉아서 손으로 클로버를 마구 훑어댑니다. "야, 이것 봐라 잘하면 행운의 네 잎 클로버가 나오겠는데?" 자신이 보기에도 지천에 깔린 클로버들이 신기한가 봅니다. 작년, 재작년에도 못 봤는데 올해 여름 내내 늦장마 탓인지 클로버가 바닥이 안보 일정도로 많습니다. 너무 많으니 징글징글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너무 많은 것은 징글징글해집니다. 올해는 클로버가 그런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여기서 행운의 네잎 클로버를 찾아보세요,

2021년 올 가을의 색은 어느 미술그림처럼 너무 예쁘다.

올 가을은 단풍의 색이 너무나도 예뻣습니다. 단풍의 색이 예쁜 한 해는 겨울이 따뜻하다는 말이 있답니다. 어느 분이 그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겨울이 따뜻하는 말은 이제 무섭습니다. 추울 때는 추워야 이상기온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그렇습니다. 나뭇잎 색이 어찌나 이쁜지 뭐라 말을 못 합니다. 예전 우리 할머니는 가을이면 이 단풍잎을 주워다가 책갈피에 하나씩 꽂아놓곤 하셨습니다. 저는 책을 넘기며 책에 눌린 단풍잎을 보았습니다. 가을 추억이 하늘거립니다..

예고없이 만난 너. 네가 바로 그 길냥이?

집으로 유턴을 해서 가는 길에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아마도 나무 뒤에 숨어있다가 저와 마주친 것 같습니다.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누구야?"라고 말을 건네봅니다. 주변을 다 가립니다. 제가 사진의 주변을 다 가린 것은 잘 아시겠지만 이런 길냥이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진도 티스토리에 쓸까 말까를 한 달 내내 보류했었습니다. 혹시 이 길이 익숙한 누군가가 이곳의 위치를 알아보고 찾아와 나쁜 짓이라도 하지 않을지 걱정 때문입니다. 길냥이들이 놀라 뛰어가버릴까 봐 최대한 길가에서 가까이 가지 않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가만히 쭈그려 않으니 경계의 눈빛을 보내는 냥이가 낯선 나를 잠시 봅니다. 옆에 같이 있던 남편은 성격이 와일드하고 목소리도 커서 혹시 그 큰 몸짓에 놀랠까 싶어 같이 쭈그리고 앉아 가만히 있으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길냥이를 돌보는 분을 만나다.

오늘은 행운의 날이었을까요? 늘 뉴스에서만 보던 길냥이를 돌보아주는 고마우신 분을 만났습니다. 이 분과 친숙한 관계인지 저를 본 냥이들은 이 분의 다리 사이로 가까이 가서 경계를 합니다. 한 녀석은 유독 저를 경계하며 그분의 다리에서 자신의 몸을 가까이합니다. 저 길냥이는 자신을 돌보는 사람과 자신의 단짝을 지키느라 바빠 보입니다. 처음 만난 사이인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낯을 많이 가리고 처음 보는 사람과는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스타일인데 관심사가 같아서 인지 말을 걸었습니다. 길냥이를 돌보시는 분도 산책을 하다가 이 길냥이들을 보았다고 합니다. 두 마리 모두 오른쪽 귀가 잘려있는 것을 보니 누군가 키우면서 중성 수술을 마쳤고, 그리고 여기에 버려졌다고 합니다. 버려진지도 얼마 안돼 길냥이들은 몸이 매우 깨끗했습니다. 어디를 보나 길에 뒹군 흔적이 없을 정도로 단정해 보였습니다. 가끔씩 산책하면서 고양이 간식을 가방에 챙겨서 와서 먹인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보살펴주는 것을 알고 어디에도 가지 않고 항상 이곳에서 이분을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걱정을 하십니다. 자신도 이제 몇 달 후면 이곳을 팔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 후의 일을 걱정합니다. 혹시 다른 사람들이 먹을 것 주면서 길냥이들을 다른 데로 데려가거나 괴롭히지 않을지 그것도 걱정을 합니다. 자신이 이미 집에 개를 두마리 키우고 있는 상황이라 데려갈 수도 없다고 합니다.

아직은 어린 길냥이.

사람의 나이로 치면 어린 10대로 밖에 보이지 않는 고양이들이었습니다. 중성 수술을 한 상태라고 하니 더 이상 길냥이가 많아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쁜 길냥이. 예쁘다. 예쁘다.

뜻하지 않게 고양이들을 만나니 기분이 좋습니다.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우리 남편도 예뻐합니다. 하지만 아직 낯선 관계이니 만지거나 가까이 다가서지 않습니다.

하품하는 길냥이. 내가 괴롭힌 것 아님.

뜻하지 않게 이 가을 산책에서 귀여운 녀석들을 만나다니 오늘 하루는 행운입니다. 하품을 하는 것을 보니 저에 대한 긴장감을 풀었나 봅니다. 마음 같아서는 집에 두 마리 다 데려가서 보살피고 싶지만 우리 집도 그리 상황이 좋진 않습니다. 고양이를 집에서 키울 자신도 없습니다. 어렸을 적 단독주택에 살 때 우리 집 아궁이로 몰래 들어와 살던 길냥이 그녀석 생각도 났습니다. 알고 보니 새끼를 가진 상태로 추운 겨울날 우리 집에 숨어 들었습니다. 아궁이가 반지하에 있었는데 그 아궁이의 온기에 몸을 식빵처럼 굽고 앉아있었습니다. 엄마와 나는 새끼까지 가진 고양이를 차마 내치지 못했습니다. 우리 가족중에는 동물을 극도로 싫어하시는 분도 계셨으니까요. 그 분에게 들킬까 참 걱정이 되었었더랬습니다. 엄마와 내가 거의 007작전으로 들키지 않고 그 고양이를 돌본적이 있습니다. 그런 인연은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그 고양이는 우리 집에서 새끼도 잘 낳고 잘 지냈었습니다. 고양이는 때가 되면 나간다던데 나가지 않고 새끼들과 잘 지냈었습니다. 그러다가 꼬리가 길면 잡힌다고 고양이를 극도로 싫어하시는 분에게 들통이 났습니다. 그분은 얄밉게도 그 다음날 어디서 힘쎈 진돗개 숫컷 한마리를 데리고 왔습니다. 엄마와 나는 정말 황당했습니다. 생전 동물을 한 번 데려오지 않으신분이 진돗개를 가지고 오다니요. 현관앞에 딱 집 지키는 개로 키우려고 한다나요.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어쩔 수 없이 우리집 고양이는 새끼들을 다 데리고 집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밤마다 그 고양이가 내 집 창가 아래에서 울었습니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그분이 미웠더랬죠. 그렇게 예고없이 찾아왔던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비극으로 끝났습니다. 그때 마음을 다해서 키웠기에 너무 그 감정이 힘들었더랬습니다.

자신의 단짝이 늘 먼저 먹도록 한다는 길냥이.

제가 오늘 말이 매우 많네요. 둘이 같이 의지하는 사이인가 봅니다. 자신의 단짝이 돌보시는 분이 준 참치를 먹는 동안에도 끝까지 주변을 살핍니다. 때로는 이 지역을 아는 초등학생들이 고양이를 부르며 돌을 던진다고 합니다. 그러니 경계를 더욱더 안 풀고 매번 긴장 상태로 있는 것 같습니다. 단짝이 다 먹고 난 뒤에 다시 돌보시는 분이 참치를 주자 자신도 먹습니다. "둘이 사귀는 사이인가요?"라고 물으니, 아니랍니다. 둘 다 수컷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둘이서 한시도 안 떨어지고 붙어 있는다고 합니다. 의지할 것이 저희 둘 뿐이라 그런 것 같다고 합니다. 사진 찍기도 미안해. 하지만 마구 찍어대고 싶은 마음 멀리하고 살짝 찍었습니다.

길냥이가 저를 바라봅니다. 그 옆 고냥이는 그 순간에도 경계를 합니다.

좌, 우를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길냥이. 세상의 삶이 너희도 녹록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다는 것이 이렇게 작은 동물도 그리고 나도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듯 그런 삶이구나. 그래도 네 옆에 의지할 누군가가 있어 혼자가 아닌 것이 다행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곧 들이닥칠 추운 겨울이 걱정이 됩니다. 추운 겨울 동안 추운 것을 싫어하고 따뜻한 곳을 좋아하는 길냥이들이 살아내야 할 시간들을 말입니다. 추워서 둘이 어디 가서 붙어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섭니다. 누군가 괴롭히지만 않아도 좋을 텐데라는 생각도 합니다.

나를 보는 길냥이. 반갑다. 길냥이

우리 아이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귀여운 고양이들을 만났다고 이야기를 해주니 그 모습이 궁금하다며 사진을 봅니다. 한 번도 동물과 함께 해 본 적이 없는 우리 아이는 고양이와 같이 지내고 싶어 합니다. 자신은 언젠가는 동물들과 같이 집에서 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생각에는 항상 신중해야 한다"라고 말을 해줍니다. 귀엽다고 동물을 들이는 것은 반대입니다. 동물 하나는 그만큼 자신이 책임을 지고 가야 할 몫이 되는 것인데 우리 아이는 책임질 능력이 될 때까지는 그 말을 하면 안 된다고 말을 해주었습니다. 키우다 버려지면 그것이 더욱 이 동물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길냥이들의 안전이 걱정이 됩니다. 같이 한 지구에서 공존하는 것인데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나늘 위해 포즈를 취해주는 길냥이

너를 만난건 오늘의 행운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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