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포토

백제 위례성

길 위 2021. 12. 27.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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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부여군에 가면 백제 위례성이 있습니다. '위례성'이란 이름은 백제의 첫 도읍지의 명칭이었다고 합니다. 위례성은 서울에 지금 소재한 몽촌토성, 풍납토성을 위례성으로 보고 있습니다. '위례'라는 말이 뜻하는 것은 '울타리, 아리수=한강, 왕성, 대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부여에 위치한 백제문화단지 안에 재현되어 있는 위례성으로 백제 건국 초기 한성기 도성의 모습을 재현하였다고 합니다. 위례 성안에는 위례궁과 고상가옥, 관리들의 집이 있고 지금의 역사자료에 따르면 아마도 서울에 있는 풍납토성이 한성기 때 도성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합니다.

백제의 탄생 위례성을 재현. 위례성의 입구모습.

백제를 건국한 온조왕은 한강 유역에 자리를 처음 잡아서 빠르게 성장하였습니다. 하지만 고구려 광개토 대왕의 공격으로 한강의 일부를 잃게 되버리고,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의 공격을 받아 그마저 남은 한강유역도 완전히 잃게 됩니다. 결국, 지금의 공주 땅(웅진)으로 옮기게 됩니다. 그 이후 '성왕' 이 백제의 도읍을 다시 한번 지금의 부여(사비)로 옮겨갑니다. 백제는 이렇게 나라의 도읍을 세 번이나 옮긴 나라가 됐습니다. 그렇다면 백제는 한강유역에서부터 시작된 것인데 백제가 도읍을 위례성(한성))이었을 당시 풍납토성이 그 백제의 도성이 아닌가 유추하고 있다는 뜻이네요. 지금 제가 서 있는 백제문화단지안에 있는 이 백제 위례성은 그 당시의 위례성 모습을 재현한 것이군요. 이제야 이해가 좀 가기 시작했습니다.



길 위의 사진관
촬영일 2021. 12. 22
여행사진의 기록

백제문화단지내에 위치한 백제위례성으로 가는 길.

계속 이야기를 하자면 그 두번째 백제의 도읍지가 지금의 공주 땅(웅진)이라는 곳이었는데 개로왕이 죽고 나서 문주왕이 급하게 도읍을 옮긴 곳이랍니다. 공주의 웅진성은 원래 흙으로 지어진 '토성'이었는데 앞에는 금강이 흐르고 뒤에는 산이 버티고 있는 지형으로 적군이 쳐들어올 때 수비하기 편리한 좋은 조건의 성의 위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주의 땅 자체가 넓지 않기 때문에 매우 불편했다고 합니다. 백제 때에는 공주의 그 성을 '웅진 성'으로 불렀다가 고려 시대 이후에는 '공산성'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공주의 대표 관광지로 사람들이 많이 가 보는 그 '공산성'이 옛날 백제의 성이었군요.. 어쨌든 백제는 우리 한반도에서 최고로 좋은 위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적들로 인해 매우 피곤했나 봅니다.

백제인들의 삶을 볼 수 있는 성을 지키는 사람들의 집. 뒤쪽으로 흙담이 있는 위례궁의 출입구.

위례궁(Wirye Palace) 은 온조왕이 하남 위례성에 도읍하였을 때 정무를 보던 왕궁의 이름을 말합니다.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기를 '새로 궁실을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또,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성은 흙으로 쌓여 있는 토성이고 위례성이란 이름과는 다르게 움막집으로 이루어진 곳. 움집 안은 어두컴컴하고 불을 때는 아궁이가 있었습니다. 사진의 오른쪽 흙으로 된 담으로 된 문으로 걸어서 들어가면 그곳이 '위례궁'이라는 곳입니다. 위례궁도 지붕은 초가로 되어있어 이곳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왕이 정무를 보기에 좋게 집의 모양이 좀 더 크다는 것일 뿐. 적들이 들어오면 언제라도 도망치기 좋은 상태라고나 할까요? 처음 한성에 자리를 잡았으니 초기의 위례성의 모습이 저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위례성 안의 풍경. 맨 안쪽으로 지붕만 보이는 위례궁이 자리잡고 있다.

성의 바깥쪽은 성을 관리하고 지키는 사람들의 움집으로 되어 있고 맨 안쪽으로 온조왕의 '위례궁'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백제인들의 삶은 매우 화려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 결국 마지막 백제의 의자왕이 흥청망청하는 삶을 살다가 결국 백제가 멸망하게 된다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결국 승리한 사람들의 기록이요, 역사 속 백제를 멸망으로 이끈 '의자왕'에 대한 진실은 지금은 확실하게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는 백제인들의 모습은 그다지 화려하지도 않은 삶이었을 듯합니다.

길 위의 사진관이 보내는 위례성의 힘찬 깃발의 모습

백제의 문화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많이 남아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이 흙으로 만든 성 아랫부분에는 물로 성을 둘러놓았고, 여기에 오랜 2억 5천만 년 전부터 살았다던 철갑상어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한두 마리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 많은 양의 철갑상어가 놓여 있습니다.

위례성 앞의 성 둘레로 만들어진 물길의 철갑상어.
흙으로 된 위례성의 둘례의 풍경

백제의 깃발이 바람에 날리고 어디선가 백제를 노래하는 음악이 틀어져 있습니다. 겨울철이니 이 위례성의 움집과 초가지붕들을 다시 손을 보는 공사를 일부에서 하고 있습니다. 온조왕이 기거했다는 '위례궁'은 백제시대 영상실로 바뀌어 있습니다. 사진을 찍어둘걸 이렇게 보고 나면 뭔가 하나 빠진 듯한 느낌이 들 땐 다시 가고 싶은 마음까지 듭니다. 아이들과 같이 와서 백제인들의 삶과 나라의 운명들을 이야기해주며 이 길을 걷는다면 좋은 역사공부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며... 다음엔 미리 공부하고 가리라!

백제문화단지에 있는 제향루 전망대에서 바라본 오른쪽 위례성 왼쪽은 백제 사비시대의 생활문화마을 전경

일단은 12월의 백제문화단지는 매우 추울 예정입니다. 그리고 걷는 길 또한 매우 넓습니다. 저는 이곳을 다 보았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위례성 쪽에서 시작되는 산책로 (시전거리, 홍제문, 선유정)이 있는 길은 다리가 아파서 못 가보았습니다. 다음 기회에 다시 자세히 보고 싶습니다. 그만큼 너무도 넓고 넓은 곳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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